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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선물(누가복음 17:11-19)
  • 설교일2022-11-20
  • 성경본문누가복음 17:11-19
  • 설교자김철웅 목사
  • 조회수33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미암교회에 부임하게 되어서 이번 주에 쉬워 보이는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숙제를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추수감사주일 헌금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종이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감사기도제목 10개를 적는 일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감사 기도제목 10개 채우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감사제목 1번, 2번, 3번까지는 어느 정도 막히지 않고 나갔는데 4번부터 10번까지의 감사의 제목을 채워 나가는데 점점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왜 그랬을까요? 10가지 감사의 제목을 술술 적을 만큼의 감사를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우리는 참 감사에 인색하기까지 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아니 감사를 마음 한쪽 구석에 밀어 넣고 꺼내어 보려 하지 않기도 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마음 한편에 밀려 있던 감사의 제목들을 발견하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또한 감사절 절기에 자주 접할 수 있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길을 여행하실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여정 중에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그 만남은 바로 나병환자들, 즉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던 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나병(심한피부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율법의 규례는 이러했습니다.

레 13:45-46

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어떻습니까? 이 말씀대로 한 번 따라해 보면 어떨까요? 율법은요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고, 진영밖에 살며, 또한 자신들이 악성 피부병에 걸린 존재임을 알려서 그들의 부정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얼마나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움 그리고 모욕감이 들었을까요. 그러니까 이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었고, 그저 나병환자들끼리만 같이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피부병이 주는 육체적인 고통도 힘들었지만,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질병 자체보다, 율법이 규정하는 이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이러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소리를 친거죠.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먼~ 곳에서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들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소리를 친 겁니다.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그 외침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열 명 모두는 한달음에 제사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열 명 모두 가는 도중 깨끗이 나음을 받았죠.

그런데 사실 제사장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단지 진단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피부병에서 깨끗해졌다고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피부병 완치 판정을 내리면 피부병에서 나은 그 환자는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나음을 받은 열 사람중에 단 한 사람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은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

이 돌아온 나병환자 중 한 사람은요 자신이 나은 것을 보면서, 누가 그 병을 고쳤주셨는지를 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그가 달려가야 할 곳은 어디일가요? 빨리 제사장에게 달려가서 그가 나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제사장에게 OK!를 받아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순서라면 그게 맞습니다. 본문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나머지 아홉 명의 발걸음은 제사장을 향하여 가고 있지 않았을까요? 아주 급하고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아홉 명의의 발걸음을 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어요. 아주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10명중 예수님께로 돌아온 한 사람의 모습을 먼저 주목해 봅시다.

 

1.

이 한 사람은 자신이 병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봄과 동시에 예수님께로 돌아가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습니다. 15, 18절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감사는 나를 제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온전한 감사는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감사의 핵심이 있습니다. 감사는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온 사마리아인...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제사장에게 달려갈 수도 있었고, 가족들의 품에 먼저 안길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그 즉시 방향을 돌이켜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는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목들을 뽑아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감사의 조건’을 찾는 것에 ‘내’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야만 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의 관심이 감사를 말할 수 있는 조건들에 너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의 중심에 가 아니라, 변화된 환경이 아니라, 우리를 잘 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주께로 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병이 깨끗이 나음을 받은 후 예수님께로 돌아온 사마리아인으로부터 보아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즉시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 지체없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즉각적인 행동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이 즉각적인 감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사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형식적일 때가 참 많습니다. 진짜 감사의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례적으로, ‘감사’하다고 하며, ‘감사’가 형식적인 인사말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언제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그 적절한 때를 살피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소위 ‘감사의 타이밍’을 잡습니다. 이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결코 아니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는 사골 국물처럼 푹~~~ 우려낸 후에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지금 바로 드리는 꾸미지 않고 진솔한 즉각적인 감사여야 합니다.

(예화) 다음 주에 교회 김장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김치를 빗대어 말한다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는 묵은지가 아니라 겉절이여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 이런 것까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나...하며 ‘감사의 조건’에 집착하게 된다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가 변질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의 기준에 가 개입할 여지가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실 감사와 영광을 내가 ‘조절’하게 되는 것이죠. 감사는 식으면 맛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 드릴 감사는 따끈한 것이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온전히 돌이켜 / 즉각적으로 드릴 수 있는 감사가 우리 안에 회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그런데 예수님께로 돌아온 한 사람 말고,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아홉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성경에는 이후의 그들의 행적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 말씀 보시죠.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떤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러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왜 너 혼자 돌아왔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갔어? 병을 고쳐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친구들이구나. 에이구...그럴 줄 알았다는 책망의 말씀일까요?

물론 제사장에게 곧장 향하지 않고 예수님께 돌아온 사마리아인의 발걸음은 매우 귀한 발걸음이며, 우리에게도 참 도전이 되는 모습입니다. 돌아온 한 사람을 앞에 두고 돌아오지 않은 아홉에 대해 책망하시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이셨다면, 이 한 사람은 다소 우쭐해질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 이 말씀에 머물면서 돌아오지 않은 아홉에 대해 책망하시는 모습보다는 그들을 향해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계속해서 느껴졌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말씀 때문입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준비해 두신 구원의 선물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감사의 믿음으로 돌아온 한 사람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내가 너의 삶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선언이십니다. 너의 구원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주겠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얻어지는 궁극적인 승리의 삶을, 영원한 생명의 풍성함을 지금부터 경험하며 살게 해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돌아온 한 사람,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병이 나음을 얻었을 뿐 아니라 ‘구원’이라는 뜻밖의 ‘감사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은 병고침을 받은 열 명 모두를 위해 구원의 선물을 준비해 두셨는데, 한 명만 돌아왔으니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예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녀들 키우랴, 맞벌이 하며 경제 생활하랴.... 매일 피곤하고 바빠서 김장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김장하고 주려고 준비해 두었는데 막내 하나만 왔네요. 엄마의 마음엔 여전히 내 새끼들 언제오지? 이번에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딱 좋아하는 하는 맛으로 김치를 담가 두었는데.... 그러며 언제 와서 가져갈까 하는 자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김치에 담겨 있음을 우리를 알 수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아홉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이와 비슷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돌아온 이에게 주시는 선언이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돌아온 이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에 잇닿아 있을 수 있게 합니다. 감사가 주는 선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며, 구원이 주는 승리와 풍성함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선물입니다.

아... 하나님은 나의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보고 계셨구나 / 아...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보시고 아시며 이 모든 것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셨구나 / 아...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시는 분이시구나.

 

사랑하는 미암의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너희여! 지금은 감사의 능력을 회복할 기회다! 라고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열 명 모두는 감사의 선물을 받고 감사의 능력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감사를 통해 주님께로 돌아가며, 오래 묵은 감사가 아닌 바로 지금 감사를 통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감사의 선물’을 받아 누리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감사가 우리의 삶에 주는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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