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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바울 되게 도운 사람(사도행전 9:23-30)
  • 설교일2020-10-25
  • 성경본문사도행전 9:23-30
  • 설교자정 우 목사
  • 조회수102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먼저 영상 하나 보시겠습니다. (몸이 뒤집혀 곤경에 빠진 거북이를 친구 거북이들이 돕는 장면. 27)


 

  이 거북이는 공식 명칭으로는설가타 육지거북이입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거북이인데 원래 원산지는 아프리카 사막지역이라고 합니다. 사막은 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이 거북이는 수영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수영을 잘했는데요. 그런데 이 거북이의 특징 중 하나는 몸이 뒤집히면 자기 스스로는 원상태로 되돌아 올 수 없다고 합니다. 사막 지역에서 몸이 뒤집힌 상태로 오래 있으면 뜨거운 햇빛에 결국 말라 죽게 된다고 합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설가타 거북이 한 마리가 뒤집혔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의 하나는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 도우며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도움이 있었고,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이 먼저입니다. 우리를 어렵게 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도운 사람은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도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울이 바울 되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울에서 바울 되었고,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세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다메섹의 아나니아입니다. 사울의 눈을 뜨게 도와주었던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다메섹의 제자들입니다. 사울의 도피를 도와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오늘 본문의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가장 크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존경을 받는 평신도였습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바나바가 사울을 어떻게 도와주었을까요?

 


<믿어줌으로>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예루살렘에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 광야로 갑니다. 거기서 3년간 주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에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자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죽이려고 합니다. 왜요? 변절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갔더니 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 넘어 산이라고 하지요.

 

  26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예루살렘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조용히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여기서 사귄다는 단어는 교제(헬라어, 코이노니아)’의 뜻이 아니라 회에 가입한다(헬라어, 콜라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정식 등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교인들의 반응은사울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 못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은 사울이 지난 날 교회를 핍박했던 것들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일 때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교회 교인들 중에는 사울의 고소로 감옥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악명 높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와서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오라고 하니 그 말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우리를 잡아 죽이려고 몰래 들어온 사람이다. 소위 위장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잡히면 죽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사울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할 때 오직 한 사람, 바나바는 달랐습니다. 사울의 진심을 알았습니다. 사울의 눈빛도 보았고, 사울의 마음도 읽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었습니다. 그를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참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후 바나바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여행 중간에 마가라는 사람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입니다. 그런데 이 마가는 힘들다고 중간에 말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말도 없이 사라진 마가가 와서 자기도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저런 놈하고는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다고 반대합니다. 하지만 바나바는한 번 더 기회를 줘보자. 믿어보자했습니다. 사울은 끝내 마가를 내쳤습니다. 이 일로 사울은 바나바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실라 라는 사람을 데리고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사울은 마가를 믿어주지 않았지만 바나바는 마가를 믿어주었습니다. 만약 두 사람 다 믿어주지 않았다면 마가는 어쩌면 교회를 떠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믿어줌으로 마가는 훗날 초대교회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된 줄 아십니까?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바나바가 마가를 믿어주지 않았더라면 마가복음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입니다. 프로 야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제가 응원하고 있는 팀이 11:2로 이기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요, 조금 후에 자꾸 안타를 맞습니다. 그래서 상대편 점수가 막 올라갑니다. 11:2에서 114, 116, 118, 그런데 속이 상한 것은 감독이 투수 교체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소리를 쳤습니다. “저 감독 뭣 하는 거야, 빨리 투수 교체를 하지 않고, 저 사람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러다가 옆에 앉아있는 저희 집사람을 보니, 입은 다물고 있었습니다만 감독이 정신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정신 없어요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타를 계속 맞아도 감독은 투수를 믿어주었던 것입니다. 그 후 투수는 공을 잘 던져 승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투수의 말입니다. “감독님께서 끝까지 믿어주셔서 이겼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도움의 첫 번째는 믿어주는 것입니다.

 


<데리고 가줌으로>

 

  27절 상반절을 보시시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데리고라는 말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데리고라는 말은 헬라어로에피람바노마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붙잡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잘 살펴보십시오. 사울이 바나바를 붙잡았습니까? 아니면 바나바가 사울을 붙잡았습니까? 사울이 바나바를 붙잡아야 합니다. 왜요? 아쉬운 쪽은 사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사울을 붙잡았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난생 처음 교회에 왔습니다. 사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들 경계합니다. 다들 눈총을 보냅니다. 사울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런 때에 바나바는 그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일본에 가 계십니다만 김정배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김 집사님은 우리 교회를 태어날 때부터 다녔습니다. 그런데 장년이 되어 몇 년간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2년 정도 지났습니다. 어느 주일날입니다. 다들 남녀선교회 월례회에 들어갔는데, 김 집사님은 복도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왜 안 들어가십니까?”했더니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붙잡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다녔어도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이렇게 낯선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손 내밀어 붙잡아 주는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물론 좌우사정 없이 붙잡아서는 안 됩니다. 잘 살펴서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바나바 같은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둘째, ‘~편에 선다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갔다는 것은 바나바가 사울 편에 섰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람들에게 갑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사울의 지난날을 알기에 이렇게 항의합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소개하느냐? 우리가 저 사람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않느냐?’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끝까지 사울 편에 섰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제자들과 함께 며칠 동안 금식하기로 정하고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시장 쪽으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제자가 너무 배가 고파서 죽 한 그릇을 몰래 먹었습니다. 옛날에는 수도승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들켰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비난합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너만 배고픈 줄 아느냐? 이 못된 놈 같으니.”그리고 그를 왕따 시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프랜시스는 얼른 자기도 죽 한 그릇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제자들아, 이 죽 정말 맛있구나!”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이제는 동료 제자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드셨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그 제자를 돕기 위하여, 스스로 규율을 어겼습니다. 그 제자 편에 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를 비난과 정죄에서 건져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스승도 이 사람을 비난했더라면 이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강한 자 편에 섭니다. 힘 센 편에 섭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아와 과부 편에 서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편에는 누구도 서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와준다는 것은 연약한 자들을 붙잡아주고, 그들 편에 서는 것입니다.

 


<좋은 점만 전해줌으로>

 

  2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사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전해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전해주었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어떻게 주님을 보았는지, 주님께서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얼마나 담대히 증거했는지 그것들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전해 준 말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사울에 대한 이야기만 합니다.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 만났고, 예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이고,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 했는지?’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나바는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다 긍정적인 말, 좋은 말만 했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인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바나바는 마치 중매쟁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중매해보셨습니까? 중매할 때는 좋은 점만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 성격이 좋고,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등등이런 이야기 합니까? ‘이 사람 연예 몇 번 해봤고, 신용불량자요, 성질이 좀 그렇고 그래요.’안 합니다. 사울이 어떻게 안 좋은 부분이 없겠어요? 왜 문제가 없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주님을 만난 것이 분명했기에, 회심이 분명했기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의 이런 도움으로 사울이 바울 되었고,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한 주간 누구를 도우시겠습니까? 돕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어주는 것이요, 그와 동행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좋은 점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 주변 사람들을 잘 도와주심으로 바나바 같은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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