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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대하여(에베소서4:25-32)
  • 설교일2020-09-12
  • 성경본문에베소서4:25-32
  • 설교자정 우 목사
  • 조회수58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자동차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 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성격이 느긋하고 차분한데, 운전대만 잡으면 성질이 급해지고 난폭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거 누구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이 어느 날 부목사님 한분과 권사님 두 분과 함께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운전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차가 끼어들었습니다. 사고 날 뻔 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이 아니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했나?”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차가 목적지에 다 왔습니다. 권사님들이 내리면서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가 깜짝 놀란 것은 사고 날 뻔 한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부끄러워 혼이 났다고 합니다.

  어느 날입니다. 이 목사님이 운전대를 잡고 부목사님과 함께 어디를 갑니다. 그런데 부목사님이 보니, 담임목사님이 운전을 하다가 큰 소리로 ‘1’, ‘3’, ‘2’ 그런 숫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1, 2, 3, 이게 무슨 뜻입니까?” “, 그런 게 있어요. 1부터 4까지 있는데, 1은 가장 화가 날 때 하는 말이에요. 예를 들면, ‘아니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했나?’이런 말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대신‘1’이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목사님도 화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도 앞으로 숫자로 말해야겠습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 어떠셨어요? 늘 좋으셨지요?” 부인의 대답입니다. “남편을 창밖으로 확 밀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남편들, 창문쪽에 앉지 마세요.

 

  오늘 설교를 좀 바꿨습니다. 그동안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았는데, 오늘은 다른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분노로 가득 찬 세상>

 

  어느 사회학자가 오늘의 사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찬 세상.’요즈음 우리 사회는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사회 곳곳을 보십시오.

  우선 코로나로 인한 분노입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재앙이 와서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가에 대한 분노입니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일하는 근로자도, 사무 보는 직장인도, 너 나 할 것 없이 다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실 것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얼싸안기도 하고, 축구한다고 서로 몸싸움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누가 마스크를 안 쓰고 있으면, 거기다가 기침이라도 하면 일제히 분노의 시선으로 쳐다봅니다.

 

  정치권을 보십시오. 정치인들은 분노의 정점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와 야가 입장이 다릅니다. 그래서 논쟁을 벌입니다. 그때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특별히 SNS에 올린 글들을 보십시오.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하지 않습니다. 고상하고 완곡한 표현도 쓰지 않습니다. 독설을 퍼붙습니다. 분노입니다.

 

  또한 집회와 시위의 현장은 분노의 자리입니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자리에 오셨습니까?”할머니의 대답입니다. “화가 치밀어 올라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요즈음 어느 지도층 아들의 군대 문제로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매일 싸웁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싸움을 보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분노해야 합니까? 책임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멈추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교회들도 화가 많이 났습니다. 비대면 예배에 대한 문제 또한 교회가 마치 코로나의 온상인 것처럼 보는 시각, 등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런 분노의 문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이 없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일들은 계속될 것입니다.

 


<분노에 대한 성경 말씀>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중의 일부입니다.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말씀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은새 사람의 옷을 입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 사람의 외적인 모습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새 사람의 외적인 모습, 두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말에 대한 것입니다.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둘째, 분노에 대한 것입니다.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여러분, 어떠세요? 새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뭐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합니다. 말 조심히 하는 사람이요, 분노 잘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분노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26, 31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이 말씀에서 보면, ‘분노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노함, 분냄

 

  여러분, 화내십니까? 분노하십니까? 26절 상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분을 내어도...” 이 말씀은 인간은 분노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화도 내고, 분도 낼 수 있습니다. 왜요?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감정, 네 가지가 있습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입니다.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있고, 인간의 분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다음의 말씀들을 보십시오. 신명기 919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시편 7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마태복음 21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어떠십니까? 하나님께서도 분노하셨고, 예수님께서도 분노하셨습니다.

 

  둘째, 인간의 분노입니다.

  인간의 분노는 선한 분노가 있고, 악한 분노도 있습니다.

(1) 선한 분노입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말하면 거룩한 분노요, 일반적인 용어로 말하면 의분(義憤)입니다. 부당한 처사나, 불의에 대한 분노입니다.

(2) 악한 분노입니다.

  보통 우리의 마음속에는 크고 작은 분노들이 쌓여있습니다. 그동안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이 분노로 바뀌어서 우리 마음속에 쌓여 있게 된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고,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고, 직장에서 받은 상처도 있고, 심지어 교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자극이 있게 되면 우리 속에 있던 분노가 올라와서 폭발하게 됩니다.



<분노 다스리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분노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면 다양한 방법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본문에서 제시하는 방법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이게 무슨 뜻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분노를 마음속에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화가 날 수 있습니다.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적절하게 해소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꾹꾹 담아놓지 말아야 합니다. 담아놓으면 얼마 후에는 반드시 폭발합니다. 그 폭발력은 대단합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적절하게 풀어야 합니다. 속에 쌓아놓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이게 무슨 뜻입니까?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언제 틈을 잘 탈까요? 우리가 화내고 분노할 때입니다.

  우리가 분노하기 전에는 이성에 따라 말도 하고 행동도 합니다. 소위 이성 중심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분노하면 이제는 이성 중심의 사람에서 감정 중심의 사람으로 바꿔집니다. 그래서 감정에 따라 말도 하고 행동도 합니다. 그러면 조용조용히 말하지 않습니다. 큰 소리를 칩니다. 눈빛이 달라집니다. 결국 싸움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때에 마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까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도, 우리의 인격도, 심지어 우리의 신앙도 다 망가뜨립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셋째, 서로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불쌍히 여기다이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창자가 타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말하면애간장이 탄다입니다.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는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여기서는 사도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자주 사용하셨던 단어입니다.

불쌍히 여기다이 단어는 영어로컴패션(compassion)’입니다. ‘com’함께라는 뜻이고, ‘passion’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함께 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아픔에 함께 할 때 치유의 역사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실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서로 불쌍히 여기라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상대방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불쌍히 여겼습니까? 긍휼히 여겼습니까? 31절에 보면, 노하게 했고, 분 내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노하고, 분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 대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때 갈등도 그치고, 싸움도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즈음 분노의 세상 한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제 심정을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저는 요, 어디 가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 얼마 동안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무디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어느 도시에 가서 전도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전날 도착했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를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은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얼른 숙소로 올라갔습니다. 설교 준비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조간신문 일면에교만한 전도자, 무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목사님의 참모들이 그 신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무디 목사님에게 큰 일 났다고 보고했습니다. 교만한 목사님으로, 그것도 신문에까지 났으니 집회가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 날 집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신문 이야기부터 합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 저를 교만하다고 했는데, 그 기사를 쓰신 기자님, 어디 계십니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무디 목사님 계속 말합니다. 기자님, 감사합니다. 저는 요, 기자님이 보시는 것보다 훨씬 더 교만하고,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써주셨으니 정말 감사합니다.’그랬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집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끓는 물과 같습니다. 잘 관리하면 난방에 사용하기도 하고,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엎지르면 주변 사람들을 상하게 만듭니다.

 

  이제, 말 조심히 하시고, 분노 잘 조절하셔서, 평화의 세상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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