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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면 충분하다 (사무엘상 17:38-45 )
  • 설교일2019-09-08
  • 성경본문사무엘상 17:38-45
  • 설교자정 우 목사
  • 조회수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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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본문내용


    

    여러분, ‘프랑스 파리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개선문? 몽마르뜨 언덕? 패션? 향수? 아닙니다. 에펠탑입니다. 사진을 보십시오.



 

   이 탑은 한 해에 관광객 700만 명이 찾는다고 합니다.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이자 랜드마크입니다.

   여러분, 에펠탑의 역사를 아십니까? 에펠탑은 처음부터 그렇게 유명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에펠탑은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1889년 프랑스 시민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고, 또 하나는, 파리 국제박람회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박람회를 바로 이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탑을 디자인한 사람은 프랑스 공학자이며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에펠탑이라 지었습니다. 2년 만에 지었는데, 문제는 이 건축물을 짓고 나자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예술가 300명은이 철탑은 파리의 분위기를 해치는 건물이라고 하여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 모파상은 이 탑 보기를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이 탑은 파리 시내 사방에서 다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서 점심을 먹으면 이 탑이 안 보일까 생각하다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거기가 어딘 줄 아십니까? 바로 그 탑 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모파상은 점심을 그 탑 밑에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 건축물의 수명을 이런저런 이유로 20년으로 했습니다. 20년 후에는 허물기로 했습니다.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철거하려고 했는데 보니까 이 건물은 전자 통신에 너무나 좋은 구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명을 무제한으로 늘렸다고 합니다. 기사회생했습니다. 에펠탑은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성이 인정되었고 마침내 파리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서론을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무엇이 있다고요? 에펠탑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서울하면 딱 떠오르는 세계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이 아침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통하여 우리에게 정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찾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줄거리>

 

   오늘 본문 말씀은 언제 읽어도 신나는 말씀입니다. 어린 다윗이 그 거대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8형제들 중에 막내였습니다. 다윗의 형 세 명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입니다. 아버지가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내가 음식을 싸줄 테니 형들에게 갖다 주고 안부를 알아보고 오거라.”

   다윗이 전쟁에 나가보니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나와 상대할 사람 나오라. 나와 상대하여 내가 이기면 너희는 우리의 종이 될 것이요, 그가 이기면 우리는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군사 중 어떤 사람도 나서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상대할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해갔습니다.

   다윗이 이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곁에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말합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사람이 누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합니까?”그리고는 자기가 나가서 상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느 군인이 사울 왕에게 이 사실을 전달합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네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너는 안 된다. 너는 소년이요, 저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용사였기 때문이다.’그리고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물러서지 않습니다. 양을 치면서 사자와 싸운 이야기를 하면서제가 나가서 상대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도 사정하니 어쩔 수 없이 다윗을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자기가 입고 있는 군복을 입혀주고, 자기의 무기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린 다윗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것들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평소에 양을 칠 때 가지고 다녔던 막대기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고 나오는 다윗에게 골리앗이 말합니다. 43절 중반절입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다윗이 외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면서 물맷돌 하나를 던집니다. 그것이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그러자 그 육중한 체격의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달려가서 그의 칼로 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군사들이 도망갑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습니다. 그들을 뒤쫓아 가서 무찔렀습니다. 이것이 사무엘상 17장의 내용입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

 

   여러분은 이 사건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향해 야유하는 장면, 사울 왕이 쩔쩔매는 장면, 사울 왕이 다윗에게 자기 갑옷을 입혀주는 장면, 물맷돌 갖고 나가는 장면, 물맷돌을 던지는 장면, 골리앗의 목을 베는 장면, 등등.... 어떤 장면이 가장 감동적입니까?

   저에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사울 왕의 갑옷을 다 벗고, 물맷돌 다섯 개를 갖고 나가는 장면을 꼽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벗었습니다. 그 이유는 갑옷이 클 뿐만 아니라 또 몸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갑니다. 그는 거기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랐습니다. 목자의 제구(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목자의 제구란 목자들이 양을 치러 다닐 때 둘러매는 조그만 주머니입니다.



   저 돌을 주머니에 넣고 빙빙빙 돌리다가 홱 던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물맷돌을 주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성경에는 무슨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나 원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건들을 기록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기록을 다시 사건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기록을 사건으로 전환하려면 특별히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 그랬을까? 어떻게 했을까? 등등 질문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갑옷을 벗고, 물맷돌을 주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말을 혼자 중얼거렸을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해야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상상입니다. 첫 번째 질문과 비슷합니다만 성경의 장면 하나하나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상상하는 일입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주우면서 무슨 생각과 무슨 말을 했을까요?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생각과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거면 충분하다

   다윗은 이런 기도와 이런 신앙고백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 골리앗이 아무리 거대하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나아갑니다. 저 골리앗을 무찌르는데 물맷돌 이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있었기에, 다윗은 골리앗에게 외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저는 우리교회에서 27년간 목회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교우들 한 분 한 분에게는 다 감동적인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중에 돌아가신 분 중 한 분을 소개합니다. 신봉교 집사님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그 집사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발도 불편하고, 또 말도 어눌하신 분이었습니다. 길음동에 사셨는데 예배에 모범이었습니다. 주일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수요기도회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길음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십니다. 태극당에서 내려 교회까지 걸어 올라오시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사님을 뵐 때마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사님이 회갑을 맞이하여 교회에 헌금을 하셨습니다.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오빠에게 매월 조금씩 용돈을 통장에 넣어주었습니다. 많지 않습니다. 어느 날 집사님이 통장을 갖고 오셨는데 한 10년 정도 모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다 교회 피아노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 피아노가 지금도 있습니다. 일송기념관 2층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렇게 기뻐하셨던 집사님의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거면 충분하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이 두 진영을 보십시오. 블레셋은 우세하고 이스라엘은 열세입니다. 블레셋에는 골리앗 같은 장수가 있으나 이스라엘은 그 같은 장수가 없습니다. 블레셋은 철기 무기가 있으나 이스라엘은 없습니다. 다 없습니다. 다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이젠 죽었다. 이젠 망했다라는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오는 그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막대기와 물맷돌 다섯 개를 갖고 나가는데도이거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절대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 한분만 계시면 만사 O.K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어떤 소리입니까? ‘감사하다, 만족한다, 족하다, 충분하다이런 소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족하다, 없다, 적다이런 절규입니다.

 

<충분하다>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저자는 폴란드의 국민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입니다. 그녀는 20122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시집은 그 해 4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유고 시집입니다. 30여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그녀는 199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시집의 특징은 첫째, 시집 제목의 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집에는충분하다라는 제목의 시가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 이 시인은 세상을 참 밝게 산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폴란드 사람입니다. 폴란드가 어떤 나라입니까? 세계 제 2차 대전을 전후로 전체 국민의 1/5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쟁 후에는 독재정권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세상이 어떠십니까? 그런 충분하지 않은 세상, 충분할 수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충분하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충분하다라는 제목의 시는 안 나온다는 것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내용 중에는 어디 나오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라는 제목의 시 한 부분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손가락 다섯 개, 그 각각의 끝에 있는 스물일곱 개의 뼈, 서른다섯 개의 근육, 2천 개의 신경세포들 나의 투쟁이나 곰돌이 푸우의 오두막집을 집필하기엔 이것만으로 충분하고도 넘친다.”

   이 시인은 자기의 가냘픈 손을 보면서, ‘그 손은 연약하고, 부족한 것 같지만그러나 이 손으로 여러 작품들을 집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만으로 충분하고도 넘친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긍정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손은 단순히 자기의 연약한 손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자기 가정을 의미하기도 하고, 고난 받는 자기 국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수하고 감당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뭐가 있어야, 얼마나 있어야이거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지 차고 넘쳐야충분하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좋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23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떼에는 들녘에서 양을 칠 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입니다. 왕이기에 얼마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그렇게 고백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어떠십니까? 우리 주님은우리가 아침 먹고 왔고, 또 이렇게 옷 입고 왔다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이거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때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족하다, 없다라고 하면 거기에 원망과 불평이 있고,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돌맹이를 가졌어도, 흙수저일지라도 , 하나님 믿습니다라는 이 절대적 신앙으로 나아 갈 때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이거면 충분합니다라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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